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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차 랜드 전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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== 피해와 전쟁범죄 == {{{#!wiki style="border: 1px solid gray; border-radius: 5px; background-color: #F2F2F2,#000; padding: 12px" 상세 내용은 [[띠에우리엔 대학살]] 문서 참고.}}} 전쟁으로 연합국 쪽에서 약 315만 명, 동맹국 쪽에서 약 389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, 부상자와 실종자를 합친 사상자는 약 2,130만 명에 이르렀다. 전투가 주로 라 마베라·체르드·유고랜드·청평의 땅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사망자 가운데 민간인의 비율이 1차 랜드 전쟁보다 훨씬 높았다. 가장 널리 알려진 전쟁범죄는 1975년 10월의 '''[[띠에우리엔 대학살]]'''이다. 시가전 동안 청평 당국이 사전 명부에 따라 벌인 처형, 점령 뒤 북산 국가경찰이 벌인 부역자 색출과 즉결처분, 그리고 시가전의 포격과 공습이 겹쳐 대규모 민간인 사망이 발생했다. 처형에 의한 사망만 2,000~8,000명으로 추정되며, 누구의 책임인지는 지금까지도 쟁점으로 남아 있다. 마베라 내전에서는 양측 모두 점령지에서 보복을 벌였다. 혁명정부는 귀족과 성직자, 왕당파 협력자를 인민재판에 넘겼고, 왕당파는 수도를 되찾은 뒤 공산주의자와 그 가족을 색출하는 백색 테러를 벌였다. 체르드 전선에서는 비셰나르 포위전 동안의 시가지 포격이, 남부 전선에서는 사비에트 점령지 유고랜드 주민의 강제 동원이 큰 피해를 낳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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